연예가 소식 2009. 11. 5. 08:09

그레이 가든스 (Grey Gardens, 2009) : We belong together, We happy together

그레이 가든스 (Grey Gardens, 2009) ☆☆☆


이디스 '빅 이디' 에윙 부비에 빌와 그녀의 딸 이디 '리틀 이디' 부비에 빌은 소설에서 나올 법한 괴짜 모녀입니다. 그 둘은 한 때 사교계에서 잘 나갔던 사람들이었지만, 뉴욕 주 이스트 햄튼의 그레이 가든스 저택에서 20년 넘게 떠나지 않으면서 그들은 길고 긴 폐쇄된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그런 동안 그들의 재산은 줄어들어갔고 그들의 저택은 어느덧 부유층 동네인 이스트 햄튼에서튈 수밖에 없는 그로테스크한 구경거리가 돼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디스와 이디는 재키 케네디 오나시스의 고모와 사촌이었고 덕분에 그들은 오랜 만에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앨버트와 데이빗 메이슬 형제는 재키 케네디 오나시스와 그녀의 동생 리 래지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그들과 접촉하는 동안, 그들의 친척 이디스와 이디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레이 가든스를 방문했습니다. 메이슬 형제는 금세 이 별난 모녀와 그들의 끔찍하게 낡아 빠진 저택이 아주 좋은 다큐멘터리 소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계획을 수정했고, 얼마 후 다시 그레이 가든스에서 빌 모녀의 일상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서 다큐멘터리 [그레이 가든즈]를 만들었고 아직도 종종 기억되고 있는 이 작품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동명의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마이클 석씨의 HBO TV 영화 [그레이 가든즈]는 두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1936년부터 퇴출 위기에 몰렸던 1972년까지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상류층에 속해 있었던 이디스(제시카 랭)와 이디(드류 배리모어)가 어떻게 그런 지경으로 전락해 갔는지 보여 지는 동안, 그 이후에 상황이 약간 더 나아진 가운데 그들을 방문한 메이슬 형제(아리 그로스와 저스틴 루이스)들의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늙은 두 모녀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제는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때 그 시절만큼이나 재미있고 끼가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이디는 희한한 패션 감각을 보여 주는 가운데 발랄하게 노래도 하고 춤도 추는 중년 아줌마인 가운데, 이디스는 거의 늘 침대 신세이지만 딸 못지않게 개성 있는 할머니입니다.

그들의 과거를 보면, 그들은 분명 활달한 사람들이고 남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실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지만, 연예계에서 성공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었지요(이디스는 남편 필런(켄 하워드)과의 결혼으로 경력을 포기했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이들이 그런 초라한 은둔 생활에 박히게 되었는지 궁금하게 되는데, 여기엔 그다지 극적인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지요. 필런과 이혼한 이후로 기분이 가라앉은 이디스는 자신들의 저택이었던 그레이 가든스에 틀어박히기 시작했고 뉴욕에서 즐겁게 살면서 배우로 성공하길 열망했던 이디는 여러 일들을 겪은 끝에 어머니 곁에 있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에겐 그런 일상이 몸에 박히게 것입니다.

그들의 쇠락은 그레이 가든스의 퇴락으로 대변됩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나빠져 가는 경제 사정과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팔길 거부했습니다. 유지비도 없다 보니 그 안락한 고급 저택이었던 그레이 가든스는 흉물스러운 낡은 집으로 변해 버렸고 심지어 곁에 있는 나무가 집을 뚫고 자랄 지경까지 가버렸습니다. 나중에 위생 문제로 집에 들어온 행정 관리들이 절로 기겁하면서 코를 막을 정도로 실내는 지저분해졌습니다. 집에는 그들이 키우는 고양이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주는 먹이에 의존하는 너구리들로 득실득실하고 당연히 그들의 배설물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습니다. 어떻게 이디스와 이디가 이런 소스라칠 정도로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왔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이리하여 빌 모녀는 강제퇴거의 위기에 처하지만, 다행히도 언론의 호들갑을 통해 소식을 들은 재키 케네디 오나시스(진 트리플혼)가 와서 그들을 도와줍니다.

현재 영화는 다음 달 열릴 에미상 시상식에서 여러 후보들에 올랐는데,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드류 배리모어와 제시카 랭의 연기는 영화의 주 원동력입니다. 특수 분장의 도움을 받아서 이 둘은 젊은 시절과 늙은 시절을 그리 어색하지 않게 오가는데, 본 영화에서 드류 배리모어는 정말 멋진 연기를 선사합니다. 그녀는 이디의 별나고 과장된 면들을 한데 끌어안으면서 요란한 연기를 하는 동안 그 뒤에 숨겨진 슬픔을 놓치지 않습니다. 집 밖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 생각은 많이 해 왔었지만, 그레이 가든스를 벗어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선택임을 어머니만큼이나 본인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시카 랭은 상대적으로 덜 활발하지만, 배리모어와 함께 툭탁거리기도 하지만 죽음만이 갈라놓을 수 있는 그들의 질기고 애정 어린 관계를 가슴 뭉클하게 전달합니다.

이디스와 이디 이 두 모녀는 세상을 결코 지루하게 만들지 않게 하는 수많은 별난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꽉 틀어박힌 삶을 그렇게 오래도 살아왔지만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은 나름대로 즐겁게 삶을 이어갔을 뿐더러, 외부인들에게도 그들은 즐거운 구경거리였습니다. 우스꽝스럽게 보였지만 그들은 이에 별 상관하지 않았고 다큐멘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꺼이 자신들을 내보였습니다. 그들 인생의 마지막 장은 매우 길었고 초라했지만 결국엔 해피엔딩으로 종결되었습니다. 그들은 유명해졌고, 오래 기억되어 온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생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이어서 유명 배우들이 자신들을 연기한 잘 만든 TV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저 세상에 간 지 오래인 이들이 뭐라고 할까요? 아마 그들은 본 영화에서 다큐멘터리에 대해 할 말 있냐고 기자에게 질문 받았을 때의 이디스처럼 응답할 것입니다. "다 그 안에 있어요."(It's all in there)

P.S.

어머니의 사망 후 이디는 집을 철거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집을 팔았고 그 이후로 그레이 가든스는 매우 깨끗한 저택으로 고쳐졌습니다.

다큐멘터리 [그레이 가든스]에 나온 실제빌 모녀의모습입니다.
posted by 매직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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