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가 소식 2009. 11. 4. 23:26

부산 (2009) : 아버지들의 도시가 아니다

부산 (2009) ☆☆


자신들이 속한 세상들에서 각각 다른 위치에 있는 두 주인공들을 지켜보다 보면 여기서 뭔가 관심을 끌만 한 게 나올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영화는 이들을 그다지 만족스럽게 연결시키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들을 좋은 이야기로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후반부에 가서 별 놀랄 것 없이 신파로 이야기는 흘러가지만, 이는 허접하게 수술해서 이식한 장기나 다름없는 인상을 주고 여기서 짜내려는 감동은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 [부산]은 그다지 별 특징 없는 조폭 드라마로만 남습니다. 이는 그리 나쁘지 않지만 결국엔 이에 신경 쓸 필요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강수(고창석)은 고등학생 아들 종철(유승호)에게 그다지 모범적인 아버지는 아닙니다. 종철의 어머니 제사를 아들이 성심 있게 마련한 것에 별 신경도 쓰지도 않는 그는 아들을 때리는 것은 기본인 가운데 아들이 주는 돈보다 더 많이 뜯어가기도 합니다. 한데 정작 그는 바깥세상에서 먹이사슬의 밑바닥 신세입니다. 술과 도박으로 오랫동안 인생을 살아온 사람답게 빚은 많고 그는 사채업자에게 위협당하다가 신체 포기 각서를 받아들여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의 몸이 그렇게 가치 있을 지 전 별로 확신이 안 가지만, 그 바닥에서 거래만 하면 그만이니 본인들에게는 문제는 없겠지요.

그 반대편에서 유흥업소들을 운영하는 태석(김영호)의 이야기가 병행됩니다. 이른바 '냄비 사업'에 18년 동안 몸을 담아 온 깡패 두목인 그는 최근 들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경쟁 조직과의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 중입니다. 오랫동안 거칠게 살아온 그에게 유일한 위안인 사람은 룸싸롱 마담인 선화(정선경)인데, 그녀는 공교롭게도 종철의 어머니 은지와 닮았습니다. 그러니 종철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업소 밖에서 선화가 나오길 기다리기도 하는데, 그녀도 곧 이를 눈치 챕니다. 당연히 영화는 나중에 생기는 일과 드러나는 과거 등을 갖고 어느 정도 연결되었던 주인공들을 더 가까이 연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시작부터 영화는 부실했습니다. 강수나 태석이나 그리 정이 안 가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이런 비호감 캐릭터들을 갖고 부산 밑바닥 인생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석은 우리가 많이도 들은 깡패 두목 이야기 경로를 그냥 거쳐 가고, 강수의 경우엔 그가 겪는 일들은 제임스 본드와 비슷한 상황에 빠지는 것 빼고 그다지 신선한 게 없습니다. 비록 국내 조폭 영화들을 휘감곤 하던 마더 콤플렉스가 엿보이지만 정선경에게 1인 2역을 맡겼음에도 불구 선화를 그저 주변에서 맴도는 캐릭터로 만든 잘못은 넘어갈 수가 없지요.

만든 사람들은 그와 반대로 가려고 했습니다. 한데 의도는 확연하지만 영화가 제공하고자 하는 건 정작 그 안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있지도 않는 걸 선전하는 영화 홍보는 올 가을의 또 다른 괴상한 사례가 되었습니다(“진짜 술 땡기는 진한 감동이 온다!”). 강수와 종철 간의 관계 묘사는 그저 피상적인 수준에 불구한 가운데 영화의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되어야 할 종철은 영화에서 가장 심심한 캐릭터입니다. 아들에게 별 신경도 안 썼던 인간말종이었던 강수가 변하는 과정은 빈약하게 다루어져서 설득력이 없고, 태석이 강수와 종철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연결되는 건 성급히 봉합된 티가 납니다. 캐릭터들을 작위적인 상황에 억지로 밀어 넣으면서 그들에게 역할을 강요하니 의도한 결과가 나올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두 주인공들에게 어느 정도 관심이 가게 한 것은 두 배우들의 좋은 연기들 덕분입니다. 작년에 개봉된 [영화는 영화다]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지만, 그 영화를 시작으로 제가 주목하게 된 고창석은 그 이후로도 늘 보기 재미있는 조연이었고 이번엔 주연을 맡게 되었습니다. 비록 강수는 그의 기존 이미지와 크게 벗어나지 않은 ‘물범’이지만 그의 캐릭터를 보면 각본이 더 좋았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고, 이는 역시 든든한 연기를 한 김영호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에, [4교시 추리영역] 다음으로 본 영화에 나온 유승호는 그 영화를 보면서 든 제 걱정이 맞아떨어졌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각본이 그에게 웃는 표정을 짓거나 신음소리 내는 것 외에 제공한 것은 없지만 말입니다.

[부산]은 즉시 떠오를 비교대상들에 비해 많이 밋밋하고 부족하게 느껴지고 이런 결점은 가면 갈수록 커져 보입니다. [애자]는 더 사실감 넘치는 부산과 그곳 사람들 모습을 보여주었고, [사생결단]이나 [마린보이]는 더 흥미진진한 어두운 이야기를 해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똥파리]는 더 훨씬 생생하고 강렬한 애증어린 질긴 부자관계를 그려내서 관객을 뒤흔들었습니다. 상영 시간 동안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영화는 결국 믿음직하지 않았고 전 결말에 영 동감할 수 없었습니다. 부산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다들 아시지요?

posted by 매직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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