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웨딩 드레스]는 볼품없고 개성이 없으니 반품해도 아쉬울 건 없을 것입니다. 이야기는 너무나 진부할 지경이고 캐릭터들은 묘사하라고 하면 몇 마디들 정도 말하다가 머리가 금세 멍할 정도로 밋밋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들을 갖고도 정성도 많이 들이지 않은 주제에 우리에게 눈물 짜라고 강요합니다. 좋은 신파는 노력을 한 끝에 이야기와 캐릭터들에 관심을 갖게 해서 정당하게 눈물과 클리넥스를 얻지만, 이 뻣뻣한 신파는 준비 운동도 하지도 않으면서 눈물을 마구조로 강탈하려면서 짜증을 유발하니 거리감만 늘여갑니다. 이야기 내의 비극보다는 이 이야기에 갇혀서 개성을 잃은 캐릭터들의 처지가 더 불쌍하게 다가오는 게 무리가 아닙니다. 그들에겐 더 좋은 의상들이 필요합니다.
오래 전에 일찍 남편을 잃은 후 고운(송윤아)은 웨딩드레스 가게에서 디자이너로 열심히 일해 오면서 생계를 꾸려왔습니다. 그녀에겐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초등학생 딸 소라(김향기)가 있는데, 근처에는 고운 오빠의 가족이 살고 있으니 소라를 돌보는 문제는 거의 없지만 소라는 이미 자기 혼자서 돌보는 일에 익숙한 지 오래인 깔끔한 애입니다. 어머니가 일들 때문에 바빠서 그녀를 잘 챙겨주지 못하기도 해도 조숙한 딸은 어머니의 사정을 이해하고 있으니 모녀간의 관계는 소원하지는 않습니다.
한데 영화 처음에서 고운은 유난히 밝고 낙천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어색한 모습을 보입니다. 사전 정보가 없으신 분이라면 혹시 고운이 양극성 장애에 시달리거나 아니면 배우에게 문제가 있는 지 궁금해 하실 것입니다. 다행히 그건 그녀를 맡은 배우 송윤아의 문제가 아닙니다. 고운은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양 서투른 연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영화 시작 26분 후에 드러나고 소라도 약 50분 지점에서 감지하니 홍보 포스터만 봐도 딱 보이는 것이니 말씀 드리겠습니다. 고운은 말기 위암 판정을 받았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는 딸과 함께 남은 시간을 더 잘 보내고 싶어 합니다.
처음부터 [웨딩 드레스]의 이야기는 작년에 나온 모녀의 신파인 [애자]와 자동적으로 비교되는 동안 신선함을 잃어버립니다. 뭐, 이런 얘기야 뻔한 공식이지만 다 나름대로 하기 마련입니다. 여기에 양념들을 곁들이면서 이야기를 조리하는데 신경을 쓰면 되지요. 그러나 영화는 이야기만 갖다 놓지 도무지 노력을 하지 않고 관객들에게 눈물 짜내려고 노력하는 것에나 신경을 씁니다. 이야기에 별다른 굴곡이 없는 가운데 일회용성 극적 순간들이나 불쑥불쑥 무성의하게 끼어들어갑니다. 이러니 이야기가 제대로 전개되지 않고 뭉뚱거리니 감정은 쌓이지 않고 그 결과 마지막에 예정된 진짜 슬퍼해야 할 순간은 무취무색에 가깝습니다.
그런 동안에 줄거리 상의 문제점들이 다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를 찜찜하게 만듭니다. 딸에게 잘 대해 준다는 것이야 좋지만 고운이 왜 이리 돈을 펑펑 써대는지 전 이해가 안 갑니다. 그녀는 딸에게 게임기도 사주고 필요하다면 평면 TV도 사주고, 심지어 자신의 오빠에게 차도 사주려고 합니다(할부일까요 일시불이까요?). 가진 돈이 꽤 있는 것 같은데, 그러면 나중에 딸 장래에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을 위해 신탁 예금을 만드는 게 그녀의 삶을 더 만족스럽게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시한부 인생이라고 하지만 당연히 빨리 병원에 가야 할 사람이 왜 그러지 않는 것입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잘 살아 온 게 빤히 보이는 캐릭터들에게 각본은 왜 효과도 나오지 않은 쓸데없는 일들을 강요하면서 눈물 줄줄 흘리고 소리 높이게 만드는 것입니까?
거기에 정신 팔리는 동안, 각본은 캐릭터들의 성격 묘사를 평이하고 단조롭게 만들어 버려서 괜찮은 조연 배우들을 몰개성한 역할들에 낭비했습니다. 영화 홍보지에 조연 배우들과 그들이 맡은 캐릭터들을 꽤 자세히 소개했지만, 영화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주지도 않았습니다. 고운의 오빠 정운을 맡은 김명국은 입을 꾹 다물면서 대사 몇 마디만 내뱉을 뿐인가 하면, 고운의 언니 여운은 잠시 야비하게 나오다가 또 금방 좋은 사람으로 바뀝니다. 이기우가 맡은 태껸도장 관장 지후는 군더더기 캐릭터와 같다는 인상을 남깁니다.
주연인 송윤아도 손해를 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고운도 병만 빼면 다른 주변사람들처럼 많이 심심한 캐릭터이고 각본에 의해 조건반사식 반응을 보이곤 하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그로 인한 감정적 여파는 적습니다. 적어도, 송윤아와 김향기의 연기는 괜찮은 편이었고 둘이 잘 맞고, 그러기 때문에 이들에게 억지로 옷을 입히려는 영화가 얄밉기도 했습니다. 김향기는 매우 좋은 아역 배우 연기를 보여주었고 그녀는 어린 모습을 잃기 전에 빨리 좋은 영화에 출연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무식하게 그녀를 울려대는 영화가 아니고 말입니다.
[웨딩 드레스]는 신파로써 기능은 어느 정도 하니, 아침에 제가 경험했듯이 아마도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 이걸 별로 좋은 신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애자]나 [내 사랑 내 곁에]와 같은 괜찮은 신파들에선 이야기에 바탕이 있었고 그래서 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그들의 일에 안쓰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웨딩 드레스]는 스케치나 빨리 하고 바로 재단하려고 하느라 엉성합니다. 그러니 입은 모습이 예쁘기는커녕 눈물이 나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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